2012年7月16日 星期一

精選正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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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찌개 만드는 방법

Posted: 15 Jul 2012 11:00 PM PDT

김치찌개 만드는 방법

가정식백반의 단골메뉴 중 하나인 김치찌개에는 묵은지와 돼지고기가 들어가야 제 맛이 나는데, 돼지고기를 싫어하는 분들은 참치를 활용하는것도 좋습니다. 한편 참치를 넣어 김찌찌개를 만들면 돼지고기를 넣을 때 보다 맛이 덜하다는 분들도 있습니다. 물론 돼지고기와 참치를 넣은 경우를 비교해 보면 분명 맛의 차이가 존재합니다.

물론 참치를 넣어 김치찌개를 끓이는것이 맛이 없다는 의미는 아니며, 돼지고기 없이 묵은지와 참치로 얼마든지 맛좋은 김치찌개를 만들수 있습니다.


묵은지를 썬 다음 냄비에 들기름 한수가락과 설탕을 조금 넣은 후 김치국물을 붓고 바뜩하게 끓여줍니다.


김치찌개가 보글보글 끓면 물을 붓고 잠시 더 끓여 줍니다.

 

김치찌개가 충분히 끓고 나면 참치를 넣고 조금 더 끓여줍니다.


참치가 어느 정도 익을 때 까지 끓여줍니다.

 

참치가 충분히 익은 후 가스렌지 불을 끄면 이렇게 맛좋은 김치찌개가 완성됩니다. 이제 흰쌀밥과 여러가지 반찬들과 함께 하면 맛좋은 가정식백반을 즐길 수 있습니다.



돼지고기 수육 삶는법

Posted: 15 Jul 2012 08:43 PM PDT

돼지고기 수육 삶는법

돼지고기를 재료로한 음식은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다양합니다. 이 중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겨먹는 요리는 삼겹살, 편육, 수육 등이 있습니다.

이 중 흔히 편육과 수육을 혼동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편육은 고기를 푹 삶아서 눌러두었다가 얇게 썬 음식을 말합니다. 수육은 본래 삶은 소고 기를 말하나 소고기 외에 돼지고기 등도 수육으로 부릅니다.

편육과 수육의 의미에 대한 설명을 이쯤으로 하고 돼지고기 수육 삶는 법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돼지고기 수육 2인분 재료 목삽겹 500g, 대파 1뿌리, 마늘 3쪽, 생강1쪽, 월계수잎 3잎, 된장2 큰술을 준비합니다.


냄비에 물을 붓고 목삽겹과 준비한 재료를 모두 넣어줍니다. 돼지고기 수육을 만들기 위해 준비한 재료 중 월계수잎은 돼지고기 냄새를 없애주는 역할을 합니다.


돼지고기가 잘 익도록 1시간 정도 은근한 불에 푹 끓인 다음 젓가락으로 돼지고기를 찔러 잘 익었으면 불을 끄고 돼지고기를 건져냅니다.


이제 건져낸 돼지고기를 식힌 후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줍니다. 이때 너무 얇게 써는것 보다는 약간 도톰하게 썰어주는 게 좋습니다.


김치와 묵은지를 썰어 돼지고기와 함께 내면 맛 좋고 영양까지 풍부한 돼지고기 수육이 완성됩니다. 요즘 같은 날씨에는 막거리나 동동주와 함께 하면 더 좋습니다.
 


교과서 여행지, 강화도 고려궁터

Posted: 15 Jul 2012 07:38 PM PDT

교과서 여행지, 강화도 고려궁터

고려궁터는 몽고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고려 왕조가 강화도로 피난했을 당시 임금이 거쳐하던 궁궐로 약 39년간(1232~1270) 몽고에 대항하여 항쟁한 장소입니다.

강화로 천도한 고종은 약 2년에 걸쳐 연경궁을 본궁으로 궁궐과 관아를 지어 건물의 명칭을 전부 개성의 궁궐과 똑같이 하고 궁궐 뒷산도 송악산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고려궁터로 들어서면 정면에 동헌이 보이는데, 고려궁터 안에 있던 조선시대 관아입니다. 강화부는 조선 인조4년(1626)에 강화유수부로 승격되었고 이 무렵 이방청 등과 함께 지었으나 지금의 동헌이 그때 세운 건물은 아닌것으로 전해집니다.


고려궁터 내에 위치한 동헌에는 영조 때 명필 백하 윤순(白下 尹淳)이 쓴 명위헌(明威軒)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고려궁터 내의 동헌은 다른 곳과 달리 동헌 내부에서 지휘를 했다는 점이 특이하며, 동헌 내부에는 오래된 병풍과 소품이 세월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동헌에서 이방청으로 가는 정원 한편에 프랑스군이 약탈해 가려다 실패한 강화동종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강화동종은 성문(城門)을 열고 닫는 시간을 알리는데 사용한 종입니다.

강화동종(보물 제 11-8호)은 당시의 강화산성 남문 주변인 김상용 순절비 자리에 있었던 것을 1977년 강화 중요국방유적 복원정화사업 때 고려궁터로 이전 된 상태입니다.


강화동종은 1999년 10월 종에 균열이 생겨 더 이상 타종하지 못하게 되자 강화동종을 복제하여 설치하고, 원래의 종은 강화역사관으로 옮겨 보관전시하고 있습니다.

강화동종은 강화유수 윤지완이 주조한 것을 그 후 숙종 37년(1711) 유수 민진원이 정족산성에서 현재와 같은 형태로 다시 주조한 것입니다.

강화동종은 높이 198cm, 입지름 138cm로 조선후기 동종으로는 큰 규모이입니다. 몸통은 중앙에 굵게 튀어나온 橫帶(횡대)를 둘러 상하로 구분되며, 그 아래에 만든 시기를 알 수 있는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강화동종에서 왼편으로 내려가면 이방청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방청은 조선 중기에 강화 유수부내 六房(육방)중의 하나인 이방청으로 조선 효종 5년(1654) 유수 정세규가 건립하여 관아로 사용하던 것을 정조 7년(1783)에 유수 김노진이 내부를 개수하고 괘홀당이란 당호를 게시하였습니다.


고려궁터 내에는 우리 민족의 역사적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외규장각이 있는데, 여러 차례의 전란으로 강화도가 보장지처로 크게 주목 받게 되었습니다.

국왕과 왕실 기록물의 중요성이 강조됨에 따라 정조 6년(1782)에 건립하여, 왕립 도서관 역할을 하였으며, 왕실과 국가 주요 행사의 내용을 정리한 의궤(儀軌) 등의 서적과 왕실 물품을 보관하였습니다.

병인양요(1866) 때 프랑스 군이 강화도를 습격하면서 외규장각에 보관중이던 은괴 19상자와 함께 채색비단 표지에 선명한 그림으로 장식된 어람용 의궤들과 이곳에 있던 많은 서적과 은궤, 지도 등을 강탈해 갔습니다.

건물을 파괴하고 불을 질러 방화로 인해 귀중한 도서 4,700여 권과 왕실 귀중품이 순식간에 잿더미로 사라졌다. 현재의 건물은 1995년부터 2001년에 걸친 발굴조사를 통해 2003년에 복원한 것입니다.

한편 외규장각 뒤편에는 고려궁지 발굴지가 있습니다. 궁이 있던 것으로 추정되는 자리와 기와나 도자기 등의 유물이 다수 발굴된 상태입니다.


몇해전 고려궁터를 방문했을 때는 고려궁터 주변 시설물 등에 대한 공사가 진행중이어서 어수선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현재는 공사가 모두 완료되어 관람에 불편이 없는 상태로 주말에 한번쯤 방문해 보면 좋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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